본문 바로가기

이슈

희귀난치병 어금니아빠 이영학 부인 딸 파란만장 인생사

 어금니아빠로 불리는 이영학 씨는 세계에서 5명밖에 없다는 거대 백악종 희귀난치병 환자입니다.


 거대백악종이란 치아와 뼈를 연결하는 백악질에 종양이 쉼없이 자라는 병으로 그는 10여 차례 종양이 자란 턱뼈와 잇몸 제거 수술을 한 탓에 턱뼈는 없고 어금니 한개만 남아 있어 어금니 아빠로 불리게 됐고 부인과 방송에 여러차례 나오기도 했습니다. 




병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9살 때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턱이 아파왔고 얼굴이 조금씩 붓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고통은 계속됐고 결국 일년쯤 되자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올랐다고 합니다.


부유했던 어린 시절이지만 병명도 알 수 없는 희귀난치병 앞에 이영학 가족들도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서울대학병원에서 병의 정체를 알 수가 있었다고 하죠.


 그 때부터 이영학 거대백악종 수술을 2년에 한번 꼴로 받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그의 집안 형편이 좋아 수술비에 대한 염려는 크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얼마 못가 아버지가 사업의 실패하면서 든든했던 가정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수배가 되어 숨어 다니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찾는다며 집을 나가버리셨습니다. 어금니아빠 이영학 부모님이 그렇게 떠나고 집안에 남은 사람은 형, 누나 이렇게 삼 남매뿐이었습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간 이후로 남매는 물도 전기도 안 들어 오는 창고에서 생활을 했고, 어떤 날은 라면 하나로 세 식구의 배를 채워야 했으며 또 어떤 날은 초코파이로 저녁을 대신 하는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힘겨운 시절을 보내던 그는 성인이 되어 일식집에 취직을 하며 직업을 가지게 됩니다. 그 곳은 첫 직장이기도 했지만 이영학의 부인 최미선 씨를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습니다. 


한 직장에서 일했던 이들은 첫 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곧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어금니아빠 부인 역시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결혼식을 생략한 채 지하 방에 신혼 살림을 차리게 됩니다. 




이영학 나이 스물 한 살, 그리고 이영학 아내 최미선씨가 열 일곱 살 때 두 사람이 함께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있는 미선씨를 얼른 데려와 편안한 가정의 울타리에서 보살펴 주고자 하는 영학씨의 바람이 컸다고 하는데, 그렇게 시작한 두 사람은 가난했지만 서로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너무나 힘든 상황이었기에 아내에게 프로포즈 조차도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프로포즈 한 번 제대로 못한 것이 끝내 마음에 걸리는지 나중에 좀 자리잡으면 멋있게 해 줄 것이라고 방송을 통해 밝히기도 했죠.


그렇게 태어난 이영학의 딸 아연이는 부부의 희망이자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은 대를 이었습니다. 딸 이아연 양 역시 희귀난치병 거대백악종이 발병하여 그처럼 잇몸에 종양이 자라기 시작한 것입니다.



의사는 유전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지만 입 주변의 종양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하는 딸을 위해 밤새 코를 뚫어줘야 했고, 대수술을 한 딸의 얼굴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자꾸 종양은 자라, 잇몸과 눈 아래 탁구공만한 종양 덩어리가 딸의 얼굴을 계속해서 일그러뜨리고 있습니다.



 얼굴 종양 제거 수술은 ‘성형수술’로 분류되기 때문에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부담해야 하는 수술비는 실로 엄청나 안타까운 사연이 매스컴을 통해 여러번 소개됩니다.



그리고 얼마전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어금 아빠인 이영학의 부인 자살 소식이었는데요. 그녀는 몇 달 전 숨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후 이영학 홈페이지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신의 부인을 뒤따라 가겠다'는 내용의 자살을 암시하는 유서가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